2017년 10월 21일(토)
 

추석 연휴 마음의 건강도 챙기세요
양재웅 W진병원 대표원장(정신과전문의)


입력날짜 : 2017. 10.01. 04:45

양재웅 W진병원 대표원장(정신과전문의)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추석은 개천절과 대체 공휴일로 열흘까지 쉴 수 있게 돼 되어 많은 사람들이 달력만 바라보고 마냥 들떠 있을 것 같지만 여기저기 걱정 어린 한숨 소리들이 들려온다. ‘명절 증후군’ 때문이다.

명절 증후군은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그 단어가 익숙해져버린 고유의 문화 증후군으로 명절 전후 정신적, 육체적 피로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스트레스성 질환이다. 미국에서 발표하는 정신과의 진단체계에 ‘화병’이 우리나라 고유 정신 질환으로 등록이 돼 있으니 명절 증후군도 언젠가는 정신과의 진단체계에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명절 증후군은 본래 가사노동에서 오는 신체적 피로 및 편향된 가사 노동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 주부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 이 경우 결혼 초년생이거나 시댁과의 갈등이 있는 며느리들은 증세가 더욱 심각하다. 명절이 되면 여자들은 평소보다 가사 일이 늘어나는데다가 시댁식구들과의 생활로 행동을 조심하느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용돈과 선물 등 가족들을 챙겨야 하는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장시간 귀향길 운전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감과 정신적 스트레스도 하나의 원인이 된다. 그 외에도 명절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 비교적 젊은 층이 겪게 되는 입시, 취업, 결혼 문제와 자식들이 다녀간 뒤에 노부부가 겪는 ‘빈 둥지 증후군’ 등과 관련해 점차적으로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은 두통과 어지러움, 위장장애, 소화불량, 호흡 곤란 등의 신체적 증상부터, 피로감, 불면증, 우울감, 답답함 및 불안감 등과 같은 정신적인 증상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편 지나친 과음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증상들이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알코올 의존 환자들의 경우 단주를 유지하다가 명절을 전후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이 불편해지는 시대적인 이유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면, 장시간 귀경길에 오르지 않는다면 명절 증후군은 사라질까? 육체적으로는 많은 부담이 줄지 모르겠으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와 문화가 급변하는 와중에 다른 가족들과의 ‘만남’ 그 자체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친척들도, 배우자의 가족도 전부 내 ‘가족’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친척들과의 교류, 배우자의 부모와의 교류가 뜸해지고 서로가 서로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었다. 성장 사다리가 붕괴돼 당장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바빠지고, 핵가족화가 극 심화 되고, 개인이 강조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부모는 물론, 친척들을 만나고 챙기는 일이 부담스러운 큰 일이 돼버렸다.

이혼율이 높아지고 혼인신고를 미루거나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도 생겨나고 있다. 배우자와의 이별을 염두에 두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배우자의 가족을 마음 깊숙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게 예전처럼 당연한 일이 아니다. 부모와의 대화도 어색한 아이들이 스마트폰 세상에 살다가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척과의 만남이 마냥 반가울리 없다.

부모 세대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일하느라고 바쁘게 살아야 하는 자식 내외가 힘들게 먼 길을 오게 되면 ‘고리타분한’ 혹은 ‘짐이 되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눈치 보기 바쁘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만나서 자신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은 자녀들과 손자들의 마음이 선뜻 이해가지 않고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추석 연휴 마음 건강 챙기기

꽉꽉 막히는 도로를 장시간 동안 가야하고,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며, 그 사람들과 같이 노동을 하면서 장시간 함께 해야 하는 것, 내 친 부모도 챙기지 못하는데 이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에 의문이 들고 그렇게 고생을 해도 돌아오는 것은 싫은 소리밖에 없을 때 우리는 당연히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즉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어느 정도 조절 할 수 있다.

외부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이것이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상황인지, 통제 할 수 없는 상황인지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스트레스라고 한다면 빨리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에게 ‘항복’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가령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답답한 마음이 들고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겠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럴 때에는 빨리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다. 하지만 고향으로 가는 출발 날짜와 시간, 가는 길은 어느 정도 조작 가능하다. 조작 가능 한 것을 조작하면 된다.

편하지 않은 사람들 틈에서 계속해서 부대끼며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완벽주의 경향이 강하거나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미움 받을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남들이, 혹은 어른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수행하고자 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해지고, 마음은 황폐해지기가 쉽다.

하지만 일을 하고 불편한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는 와중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누가 쉬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견디기 힘들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뺀질거린다’는 말을 좀 들으면 어떠한가.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또한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보고 편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어색하고 불편한 것은 그만큼 왕래가 적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람 마음이 더 회피하고 싶어지는데, 평소에 자주 만나고 소식을 전했다면 덜 불편할 수 있다. 그게 어려웠다면 적어도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어른들이 흔히 오랜만에 만난 자식세대에게 말을 거는 방식은 ‘참견’과 ‘가르침’이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어른으로서 뭐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고 싶은 마음에 택하게 되는 이 방식은 젊은 세대에게 상처와 거부감을 줘서 더욱더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관심을 표현하고 싶을 때에는 근황을 묻고 ‘공감’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가족으로서의 유대감을 키울 수 있고, 그 자리가 비로소 따뜻해진다. 가르침은 자리가 충분히 따뜻해져서 상대가 먼저 조언을 구할 때 줘도 늦지 않다.

자녀들은 부모 세대의 말을 ‘경청’하자. 시대가 눈에 띄게 빠르게 변해서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이 더 많은 세상이 됐다. 그리고 어른들의 조언은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삶을 살아갔던 사람으로서 가족이기에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안에는 의미 있는 것들이 많다. 설사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경청’ 그 자체만으로도 큰 효도가 된다. 어른들에게 ‘자식들에게 뭔가를 전달했다’라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보다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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