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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잇단 정책 후퇴 논란
- 목표치 낮추거나, 정책 시행 미루는 등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책을 발표한 뒤 목표치를 낮추거나 정책 시행을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는 등 잇단 '정책 후퇴'가 논란을 빚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통신비 인하 방침이다. '통신비 인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민생 안정을 위해 최일선에 내세웠던 정책이다. 인수위 또한 출범 초기부터 "통신요금을 20% 안팎으로 인하하겠다"며 확고한 정책 의지를 밝혀왔다.

하지만 인수위는 통신업체의 반발이 일자, 지난달 13일 당선인에게 155개의 국정과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통신비 인하 정책을 시장친화적인 방식으로 하겠다"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급기야 지난 3일에는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진입규제 완화 등으로 소비자의 피부에 와닿는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서 새 정부에 넘길 계획"이라며 정책 실행을 출범 이후로 미뤘다. '정책 연기'라지만 사실상 '정책 후퇴'다.

인수위가 초기 강력한 정책 의지를 내세우다 물러선 일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7% 경제성장률'의 후퇴를 들 수 있다.

인수위는 당초 "임기 중 연평균 7% 경제성장률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물가상승 등 국내외 경제 여건을 감안해 결국 '잠재성장률 7%를 위한 경제체질 개선'으로 궤도를 수정한 것.

신불자 대책도 '정책후퇴' 과정을 거치며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수위는 이 당선인의 공약대로 "공적자금 10조원을 활용해 소액 신불자의 채무를 탕감해 주겠다"고 밝혔다가 "원금 탕감은 없다"며 일정한 선을 그었다. 당시 인수위가 신불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나 '10조원'이라는 재원 마련에 대한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수위가 운을 뗀 뒤 1주일도 안 돼 철회한 '영어몰입교육'도 교육정책의 혼선을 가져오는 등 부작용이 컸다.

당초 인수위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 영어과목 이외에도 영어로 수업하는 과목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이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관련 시행방안을 마련, 올해부터 농어촌 지역 학교를 시작으로 영어몰입교육을 시범 실시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히고 뒤로 물러섰다.

인수위가 '설익은' 정책 발표로 혼선을 빚는 것에 대해 당 내부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강재섭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에서 "인수위는 한나라당이 잡은 고기를 부두에서 인수받아 공판장까지 운반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며 인수위가 새 정부의 정책을 확정된 것처럼 발표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최근 인수위의 거듭된 '정책후퇴'와 관련해 인수위가 당선인의 공약을 취임전부터 무리하게 밀어붙이려는 '과욕'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인수위가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이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는 등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역대 어느 인수위에서도 현 정부에 차기정부의 정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전재희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인수위가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각 부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점검할 수는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각 부처의 장관이 임명된 후에 심도있게 검토하고 정책화시켜 나가야 한다"며 "인수위가 과욕을 부려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인수위 내부의 '불협화음'도 정책 후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특히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정책 혼선은 영어 공교육 추진을 둘러싼 인수위 내부의 의견충돌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달 28일 간사단회의에서는 일부 간사가 "왜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되느냐", "그런다고 사교육비 부담이 덜해지느냐", "영어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반대 목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숙 위원장의 처신도 종종 구설수에 오른다. 최근 이 위원장이 영어정책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비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확정적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영어몰입교육도 이 위원장이 영어공교육 강화 방안을 공식 발표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로, '인수위, 영어정책 후퇴'라는 비난의 빌미가 됐다.